글을 쓸 때, 그 중에서도 소설을 쓸 때면 언제나 이 표현에 각주를 달아야 하는지, 달지 않아도 되는지 고민을 하는 때가 많다.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달지 않아도 되겠지만,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면, 달아야 할 일이 많다는 것 또한 경험적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가령, 츠쿠시국(筑紫国, つくしのくに)라고 하는 단어를 생각해보면, 츠쿠시국은 대략 690년대까지 존속한 일본의 율령국(律令国, りつりょうこく)으로 당대의 지방 행정 단위에 해당하는 지역의 명칭인데,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고, 더 나아가 일본인은 거의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후쿠오카현 관광을 몇 번인가 즐겨본 사람이라면 츠쿠시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어떨까? 이 단어를 보면 분명 머리에 물음표가 생길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 글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인식함에 있어서 방해가 될 여지가 생기리라.
그렇기에 어떤 독자를 상정하여 글을 쓰는지에 따라 각주를 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정식 출판물을 쓰는 입장은 아닌지라 각주를 내 마음대로 아주 많이 넣을 수 있다는 점이 있고, 또 이러한 각주를 통해 독자들은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의 재미를 넘어 약간의 수박 겉핥기에 가까운 지식을 얻어갈 수 있기에, 좀 더 바람직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착각을 하곤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지라 이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 반대의 목소리 또한 들을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각주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작가가 한 명 있다. 물론 그 작가의 책에서 읽은 것이기 때문에 내 기억이 왜곡되어서 틀린 정보일 수도 있으나,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독본과 소설독본에서 미시마 본인은 단어를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 단어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 들어올 입장권을 얻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 기억난다.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책에서 거론되었던 단어인 마이라도(舞良戸, まいらど)의 경우 그 단어를 알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반면, 모른다면 작품의 향미를 느낌에 있어서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그 마이라도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해주는 것이 조금 더 글을 개방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나와 미시마 간의 의견 차이가 있음의 명확한 징후가 아닐까. 나였다면 각주로 마이라도를 한자와 히라가나 독음을 같이 적고, 일본의 미닫이 문으로 가로로 나무살이 있는 것이 특징인 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미시마는 자신의 독자로 일본인을 상정했고, 나는 한국인을 상정했기에 애당초 상대하고자 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식과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예시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글에 김치라는 단어에 각주를 다는 것은 괜히 종이의 용지를 낭비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치의 역사에 대해 다루면서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독자들이 잘 모를만한 개념의 경우에는 각주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미 김치 그 자체에 대한 각주와는 다른 성질을 지녔기에 설명과 이해를 돕는 유효한 수단임에는 틀림 없으리라.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기에, 그저 둘이서 술을 마시는 간단한 장면 하나를 책 한 권으로 표현하더라도 각주가 최소 스무 개는 나오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내 글이 각주로 인해 읽기 어려운 것이 읽기 쉬워졌다는 평가를 했고, 이 평가는 내 글을 읽어본 자들에게서 나오는 주류 의견이었기에, 앞으로도 소설을 쓸 때 각주를 달 것 같다.